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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9-07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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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 칼럼 현대판 간토 대지진

기사입력 2026-09-0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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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은 잊고, 다가올 일은 조심해서 받아들이고, 그래야 현재가 보다 나은 삶을 꾸려갈 수 있다고 본다. 오래전 일이다.

필자는 지난 일을 빌미로 반일 감정을 부추기거나 마치 처음 발견한 것 처럼 관심을 끌기 위함이 아니라 역사의 기록을 전제로 같은 일이 번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오늘의 글을 쓴다.

정확히 103년 전인 192391일 도쿄 등 간토 지방에서 일어난 규모 7.9의 간토대지진으로 벌어진 자연재해의 피해는 기록으로만 알 수 있다. 도쿄와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한 일본 간토 지방으로 인해 화재와 해일, 토네이도로 이어지며 도쿄의 60%, 요코하마의 80%를 파괴했다.

여기까지는 자연재해였지만 그 다음은 인재였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변질의 과정, 이 글로 인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같은 일이 번복되더라도 부질없는 희생이나 덧없는 명분의 합리화가 중단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상기하고자 한다.

지진 다음 날인 92일 발족한 일본의 고위직들은 흉흉해진 민심을 잡기 위해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집어넣었다는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유포시켰고 이를 빌미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사람이란 위기에 직면했을 때 본능적으로 구실을 찾는다.

뭔가를 명분이 있어야 이를 빌미로 현재 닥친 모든 부정을 긍정으로 기록, 보존, 발표할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 빌미를 빌미로 전국적으로 조직된 3689개의 일본인 자경단이 조선인을 학살했다.

당시 일본인에 의해 살해당한 조선인은 가장 보수적인 통계에 의하더라도 2500명이 넘고 실제 현장의 증인들의 체험을 근거로 6000명에서 1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한일간에 많은 전쟁과 침략, 그리고 온갖 찬탈과 능멸의 과정이 있었지만 한 번도 조선이나 한국이 일본을 침략한 적은 없었다. 아니 못했다.

강제노역, 위안부, 등 국제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전쟁범죄 외에서 일전에 어필한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이나 간토 대지진으로 인한 자경단 집단학살 사건은 그냥 아픔으로만 지나갔다.

자고로 강한자가 약한자에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듯이 약한 자는 살아남기 위해 강한 자에게 무슨 짓이든 당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국제사회의 살벌한 약육강식 구조는 과거도 그랬지만 현재도 미래도 언제든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일본이 한국에게 저지른 범죄도 역사에 기록되어 후세들이 같은 일을 벌이지 않도록 교훈 삼아야 겠지만 자국의 민족끼리 정당과 이념이 다르다고 어느 한쪽을 몰아세우는 일이 백주 대낮에도 버젓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지리적으로 지진이나 해일 등 자연재해로부터 어느 정도 안전한 나라다.

자연재해가 적고 전쟁이 끝난 지도 불과 73, 폐허속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재건한 지 불과 40, 이제 먹고 살만하니 배고파 죽겠다던 사람들이 배불러 죽겠다고 아우성이고 로터리 채널을 돌려가며 지붕에 올라가 안테나까지 돌려야 겨우 볼 수 있었던 흑백 브라운관 TV를 이제는 리모컨으로도 보지 않는다.

문명이 발달하는 건 현재 세대들에게 참으로 복된 일이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간토 대지진 말고도 이념 갈등으로 집단학살이 벌어지거나 이유도 모르고 죽어야만 했던 사람들이 숱하게 많았다.

결론은 말하자면 이제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불순한 목적을 사진 사람들이 권좌에 앉아 권력을 지키기 위해 살육을 저지르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사는 세상은 사람만이 살아 있는게 아니라 벌어지는 모든 상황이 생물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잠잠하다가도 언제 다시 용틀임을 할지, 평온했던 바다가 험난한 파도로 변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돌이켜 보건데 임금 하나 살리자고 수천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여러 번 있었다.

고려 쵰무신정권도 62년 동안 저 하나 살자고 몽골군에게 백성을 방치한 채 강화도에서 해상으로 세금을 걷어 호의호식 하던 시절이 있었고 조선의 마지막 황 고종때도 민비가 난리 굿을 하며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다 여우사냥을 당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김일성 세습체제가 유지되어 3대째 2,600만명 위에 군림하며 얼마나 많은 희생자를 냈던가. 1995년부터 불과 5년 사이 수 백 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완성했던 권력의 광기였다.

앞서 거론한 사건들을 종합해 보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힘없고 죄 없는 백성을 살육하고 고혈을 뽑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굶겨 죽이는 행위의 종점에는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국제사회는 평온한 바다 같지만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약육강식의 먹이사슬과 비교될 수 있다.

2026
년 대한민국은 어렵사리 일으킨 나라임에도 빠른 속도로 다시 붕괴되는 조짐을 여러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굳이 경제 말고도 국방, 교육, 정치, 치안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사항들이 권력의 안정화를 위해 축소 내지 변질 되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폐허에서 성장 가도를 달린 과정이 과도기라면 지금은 쇠퇴기로 접어들고 있다.

문명은 발달하지만 문화는 변질되어 가고 오로지 권력을 향한 질주가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편법의 난무가 대중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은 점차 그 비중이 커지고 있다. 실력이나 노력보다는 권좌에 앉아 있는 자에게 눈도장을 찍는 과잉 충성이 현실적으로 성공하는 세상이 됐다.

직장에 다니거나 사업을 해서 돈 벌어본 경력이 없는 사람이 장관직에 앉게 되거나 여차하면 경질당하는 현장을 눈앞에서 목격하니 살려고 마음에도 없는 간신배의 길을 걷게 되는 대신들이 무슨 소신으로 일을 할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일본이 자신들의 허물을 덮고 자연재해마저 악용하려고 죄 없는 조선인들을 학살하였듯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자신들의 거짓말과 죄를 덮고 없던 공을 만들어 유공자로 포장하려는 것이 문제임에도 이를 알리려고 하는 자를 집단 공격하는 일이 당연하듯 벌어지고 있다.

자신들이 목적에 걸리적거리면 그 이유를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해도 안되고 그냥 입 처닫고 살아야 하는 것이라면 일본이 자경단과 다를 바 무엇일까. 욕심이 화를 부르고 있다.

덕암 김균식 

 

김범식 (kyunsi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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