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말 잘못하면 어떤 빌미를 찾아서라도 죄가 되는 세상이다. 배재고 학생들이 스타벅스 가야지 했다가 출전 정지 징계를 받고 광주 518 묘역을 찾아 참배로 수습했고 스타벅스 홍보담당자는 탱크데이, 탁 치니 했다가 대표까지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힐난하자 온갖 단체들이 스타벅스 컵 파손 퍼포먼스를 벌이며 마녀사냥의 끝판왕을 보는 듯 했다. 감히 그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하고 야당 의원들 조차 멀거니 구경만 했다.
안규백 국방장관의 안보의식에 대해서도, 민노총 출신의 장관과 장관급 청와대 관계자까지 국회 본회의장에서 거침 없이 일갈했다. 그 과정에서 북한 김정은에게 바친 충성맹세문을 전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들리는 파격적인 발언이 뭐하다가 왜 이제야 국회에서 대놓고 이진숙 의원이 작정하고 말할까 말을 안해도될때 하는 간신배의 아첨은 죄가 작다 하지만 직언으로 말을 해 야할 때 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그죄가 크다했다.
본디 언론이 해야할 말이었다. 이 의원은 스타벅스라는 말만 꺼내도 응징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거침없이 지적했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념과 사상의 갈라치기 국가가 되었으며 어쩌다 잘 잘못을 떠나 여론의 도마위에 올리면 법리적 유, 무죄의 기준도 없이 사회적 악마로 치부되는 세상이 되었을까.
어떤 대통령은 나라를 부흥시키고도 독재자 내지 원흉으로 치부되고 또 어떤 대통령은 경제적 안정과 올림픽까지 유치하고도 묻힐 곳도 찾지 못해 유골함이 갈 곳도 없는 경우도 있다.
반면 어떤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를 망치고도 막대한 국비를 낭비하며 경호와 거처를 확보하는 등 알다가도 모를 일이 당연하고도 버젓이 벌어지는 게 대한민국이다.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까지 부정행위가 드러나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는가 하면 같은 사고라도 십 년이 넘도록 국민적 애도가 이어지기도 하고 어떤 사고는 아직도 원인조차 파악되지 못한 채 유족들의 애간장만 태우는 경우가 있다. 훗날 역사에는 뭐라고 기록될까.
지금처럼 언론의 편파 보도가 성행하고 국민들의 입장을 대변할 정치인, 시민단체, 종교단체가 함구하고 있는 시대에 누가 어떤 형태로 있는 사실 그대로 적고, 기록하고, 보존하여 후세에 남길까.
필자가 나름 28년 간 기자 수첩으로 시작해 기고, 칼럼으로 이어지는 동안 약 5,000건의 글로 남긴 모든 내용을 모아보면 일반 책자 50권도 족히 넘는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을 괜히 정론이랍시고 썼다가 고소도 당하고 협박이나 모함까지 겪게 되는데 자고로 써야 할 책임을 맡았으면 쓰든가 아니면 펜을 놓는 게 도리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일반 국민들이 몰라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알아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짧은 지면에 함축된 의미를 실어본다. 앞서 거론한 이진숙 국회의원이 왜 새삼스럽게 영웅처럼 비춰지는 것일까
종군 기자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장부가 국회의원 뺏지를 달자 기존의 국회의원들에게 출석 당해(?) 겪었던 굴욕을 죄다 돌려주는 분위기다. 마치 보란 듯이 국회의원의 위상을 제대로 발휘한 것인데 그렇다면 그동안 야당 의원들은 뭐 했을까.
스타벅스나 간첩 정도가 아니라 더 한 얘기도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없었던 일을 만들어 낸게 아니라 원래 기존에 있었던 일이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내용들이 침묵속에 갇혀 있었을 뿐이다.
이미 상당한 국민들이 오랜 기간 좌 편향적인 사상교육에 물들여지고 노동자 위주의 정책과 법안이 기업의 경영상황을 악화 시킨 지 오래다.
특정 세력이 이슈만 생기면 광장으로 나와 피켓과 촛불을 들고 마치 국민 전체의 의사인 마냥 집단 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언론은 이를 과대 포장하여 재 생산 한다.
어느 한쪽은 아무리 잘못해도 아무 잘못이 없고 어느 한쪽은 아무리 잘해도 잘한 게 없는 세상, 외눈박이 세상이 두 눈을 뜨고 사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절대 하루아침에 바뀔 일은 없지만 지금 상태라면 아무리 유능하고 탁월한 지도자가 등장해도 리더 역할을 할 수 없다.
그 어떤 대통령이 나와도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 씌우고 아무리 유능한 인재를 기용하여 국정을 이끌어도 줄 탄핵으로 국정을 마비시키면 무슨 수로 정부를 이끌어갈 것인가. 정치가 반듯해야 경제, 국방, 외교, 복지, 등 나머지 분야도 제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건 어떤 분야든 어느 정도 망가져야 복구가 가능한 것이지 아예 기반까지 다 무너지면 회복이 어렵다.
가령 농사짓기 어렵다고 죄다 땅을 메워 공장이나 건물을 지어버리면 당장은 수입쌀로 살겠지만 종래에 가격이 오르거나 수입할 곳이 없어지면 기아에 허덕이나 나머지 모든 걸 다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제 결론을 짓자면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옥석은 구분이 간다.
손에 쥔 스마트폰은 짧고 자극적인 영상만 보라고 있는게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판도도 좀 파악하고 국제정세나 외국의 뉴스도 좀 봐가면서 국내 뉴스와의 차이점도 비교하고 살펴보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국민 모두가 깨어난다면, 그래야 지금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을 차야 하는 일이 근절되는 것이다.
과거의 야당, 지금의 여당이 사용하던 말인데 어쩌다 세월이 흘러 보수 세력에게 적용 되었을까. 전 세계 어떤 나라든 좌우, 진보보수로 성향이 나눠지기 마련이지만 지금처럼 주적을 머리맡에 두고도 주적이라 부르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한 이나라의 미래는 결코 평화를 장담할 수 없다.
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건 특정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의식변화다. 현실에 안주하는 비 진취적인 자세와 나만 괜찮으면 그 어떤 일이 생겨도 관여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철저한 이기주의와 사람의 향기가 사라진 세상에서는 그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다시 부흥의 시대를 기대할 수 없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어쩌면 다 잃어봐야 빈손임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렵사리 일어난 나라다. 있을 때 잘하란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덕암 김균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