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그런대로 살만하다. 하지만 이 땅에 결혼이나 경사를 축하할만한 화환이나 누군가 삶을 마감하는 자리에 슬픔을 같이할 조화가 사라진다면, 그런 날이 언젠가가 아니라 곧 온다면 과연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 사는 의미가 남아 있을까.
그렇다 부모의 초상은 살아있는 자식의 사회적 현주소고 자식의 결혼식은 현존하는 부모의 위상이라 했던가. 그래서 평소 애, 경사에 부조나 축의금을 나누며 그런 흔적을 남겼다가 혹여나 애, 경사가 발생했을 때 주었던 곳에 돌려달라고 청첩장이나 부고를 띄웠던가.
아니라 해도 현실이다. 애, 경사의 조화나 화환이 당사자의 부모 자식에 대한 위상을 대신하고 그 자식이나 부모의 자부심, 심지어 대외적인 위상을 대신하는 모양새였다. 아니라 말할 사람 몇이나 되던가. 장례식장을 가보면 어떤 곳은 조화 하나 없이 썰렁하고 어떤 곳은 출입하는 복도부터 국화꽃으로 장식한 조화가 줄을 잇는다.
불과 3일만 지나면 꽃집 트럭이 죄다 실어갈 조화들이 나란히 도열한 채 유족들의 자부심(?)을 챙겨준다. 그러면서 조화하나 없는 고인의 영정사진에 대해 평소 어떻게 살았으면 문상객 하나 없는 장례를 치를까 하며 혀를 찬다. 대부분의 문상객들은 영정사진의 주인공이 낯설지만 유족들과 슬픔을 나누는 과정이 진지하다.
전혀 생소한 고인과는 무관하게 손이라도 잡아주고 위로를 아끼지 않는다. 고관대작 대감의 개가 죽으면 문상이 있고 대감이 죽으면 문상이 없다 했던가. 사실 망자보다 망자의 자식이 평소 얼마나 부조라는 보험에 투자했느냐에 따라 인색하게 살다가 쓸쓸한 부모의 초상 앞에 자신의 처사를 후회하며 땅을 치던가.
어디 애사뿐만 아니라 경사 또한 마찬가지다. 자식의 결혼식장에 도열한 화한은 신랑 신부보다 혼주가 평소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가늠할 잣대다. 혼주뿐만 아니라 식장을 찾은 하객들이 화환의 숫자와 리본에 적힌 글귀를 보면서 내심 그 집안의 위상과 가풍을 엿볼 수 있는 바로 미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얼마 가지 못해 사라질 구시대적 유물이자 하객이나 문상객을 부르는 자체가 어색할 날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 아니 이미 와 있고 진행되고 있지만 피부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렇다면 다가올 미래는 애, 경사에 대한 사회적 예의가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모바일 청첩장과 그 청첩장에 적힌 “마음 전달하는 곳”이라는 빈칸에 적힌 신랑 부,모 신부 부,모의 계좌번호가 전부인 것처럼 아무도 없는 결혼식장의 모습을 AI가 멋있게 만들어 낸 영상에 만족할는지 알 수 없다.
사람이 살면서 사람처럼 이리저리 이해관계에 치여 사는 것도 만만찮지만 사람을 피해 가면서 살 수도 없다. 그러니 서로 같은 종족, 민족, 혈통과 가문을 따지며 “우리”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산다.
대표적인 예로 혈연, 학연, 지연도 있지만 온갖 명분으로 조직이나 단체를 만들고 기틀을 마련하면 명칭과 정관, 운영규칙을 정해 회비도 갹출하고 참석의 의미도 다진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던가. 하지만 사람이 만든 문명이 사람의 운명을 타넘어 사람 위에 군림하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주판알로 셈을 하던 시대에서 전자계산기가 등장하고 타자로 글자를 치던 시대에서 키보드로 변하는가 싶더니 이제 말로써 모든 걸 해결하는 ai 시대에 도래했다. 그동안 모든 분야는 사람의 손이나 머리를 통해 해결되었지만 이제 사람의 손길이 점점 필요 없어지는 시대로 바뀌어 갔다.
사소하고 단순한 분야부터 복잡하고 전문성을 기하는 분야까지 문명의 여파가 끼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됐다. 편리함을 추구하던 욕심이 이젠 사람의 인격이나 실력이나 소용 가치까지 죄다 삼켜버리고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세상을 향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예고하듯 로봇이 생산 라인에서 24시간 제조와 유통을 맡아버리면 제품 원가는 당연히 추락할 것이고 돈이 필요없는 세상이 된다면 그래도 지금 아끼고 저축하라고 할텐가. 교사보다 100배나 더 똑똑한 쳇gtp가 있는데 뭘 가르치고 지식을 전달할 것인가.
해마다 100조원이 넘는 교육예산을 퍼부어도 세계 대학순위 100등에도 끼지 못하고 심지어 졸업해도 선배들의 욕심으로 회사가 해외로 떠나버려 취업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 앞에 학교는 다녀서 뭐할까. 예산을 더 써야 이듬해 편성받을 수 있으니 온갖 듣도 보도 못한 명분을 만들지 않을까.
기획에 실패해서 폐기처분된 it교육자료들은 어쩔 것이며 줄어드는 학생수는 무슨 수로 감당할 것인가. 이런 식이라면 학생보다 교사가 더 많은 교육환경이 현실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오늘 필자가 논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사는 과정에 피할 수 없는 애, 경사나 불 보듯 뻔한 저출산 재앙에 대한 대안이다.
이제 형제자매란 단어는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되니 친척이란 단어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당연히 애, 경사라는게 사라지는 것이고 모든 걸 로봇이나 AI가 한다면 우리가 살아갈 이유나 가치는 무엇이며 이대로 가다간 인류의 종말은 당연한 결과다.
대안을 제시한다. 지금부터라도 남녀간의 사랑을 인권이나 여권신장이란 명분으로 갈라치기 하지 말아야 한다. 남녀 관계란 신의 섭리에 따라 숫컷은 종족번식의 본능이 유지되어야 하고 암컷은 새끼를 낳아 젖을 물리는 동물과 다를바 없다.
포유류속하는 고래, 침팬지, 쥐, 보다 지능이 높고 사회를 이루고 산다는 것이 다르지 교배본능을 온갖 법률로 죄다 묶어 놓으니 무슨 번식이 가능할까. 정작 벌해야 할 범죄는 솜방망이고 엉뚱한 사람만 범죄자로 몰리는 일이 허다하다.
그리고 저출산도 숫자에 연연할 필요없다. 사회악이 되는 존재라면 애시당초 출산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악인으로 태어나 인간의 본분을 하지 못하고 온갖 교활함과 비인간적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면 그 존재, 차라리 없는게 낫다.
그래서 출산율을 높이기보다 지금 있는 아이들 반듯하게 잘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양보다 질이다.
덕암 김균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