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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가을날 과거길 떠난 선비들

기사입력 2024-11-18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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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전국적으로 수능시험이 치러지는 가운데 경기 안산의 광덕회 에서도 선비 약 50여명이 과거 길에 나섰다.

 



하늘색 전통 두루막을 입고 갓을 쓴 광덕회(회장 신영철) 회원들은 오전 8시 신안산대학교 국제회의장에 집결하여 역사탐방에 대한 설렘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광덕회는 안산지역 단체장이나 기타 유명인사들로 구성된 단체로써 매년 1회씩 역사탐방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번 탐방은 실학연구로 일생을 보낸 성호 이익 선생 외 경기도 광주, 남양주 등 학자들의 발자취를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출발지인 신안산 대학에서 멀지 않은 안산시 상록구 성호로131 소재 성호 이익 선생의 흔적이 모여 있는 성호 박물관이었다.

 



성호 기념관으로 불리는 이곳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실학자였던 안산지역 출신의 성호이익의 학문적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1997년 건립된 안산의 대표적인 역사관이다. 성호 이익의 친필 시고 및 간찰과 저서 등이 보관되어 있으며 도로 건너편에는 이익 선생의 묘와 사당이 건립되어 있다.

 



문화관광해설가의 친절하고 전문적인 안내와 함께 짧은 시간에 깊이 있는 내용을 소개받으며 과거에도 애국심과 애민정신으로 백성들의 현실적인 삶을 질적 향상을 위해 애쓴 이익선생의 뜻을 공감하는 자리가 됐다.

 



이곳은 평소에도 고전, 문학, 이익선생의 메모나 시, 등 다양한 소재를 함께 배우고 익히는 어린이 체험들이 상시 운용되고 있는 곳이다.

 



참배와 기념촬영까지 마친 오전 10시 성호 이익기념관을 출발한 일행은 오전 1120분 경 경기도 광주시 중대동에 소재한 조선후기의 실학자 안정복의 추모사당인 이택재를 찾았다.

 



이곳은 조선 정조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안정복이 후학을 양성하며 강학하던 장소인데 20131016일 광주시의 향토문화유산 제 5호로 지정된 바 있다. 안정복은 성호이익선생의 제자로서 1712년 출생하여 179180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영조 때 시작해 정조가 즉위하여 벼슬까지 얻는 바 있다.

 



성호 이익 선생이 1681년 출생하여 176382세로 사망했으니 안정복이나 이익선생이나 지금도 만만찮은 연세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장수한 편이다. 이택이란 벗까지 서로 도와 학문을 닦고 수양에 힘쓰는 것을 뜻한다.

 



해설사의 설명으로 이택재에 대한 이해를 더한 일행들은 기념촬영을 마치고 오전 1130분 출발, 1시간 뒤인 오후 1230분 사연도 많고 한도 많은 남한산성을 방문, 푸짐한 식사로 여행의 참맛을 더했다.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산 23에 위치한 곳으로 맛집 들이 즐비한 곳이다. 사실 이곳의 각종 음식들 중 백숙은 맛도 맛이지만 내면에 얽힌 이야기들을 알고 나면 숙연해진다. 당시 병자호란으로 조선이 전란을 겪고 있을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 온 인조임금이 추운겨울날 먹을 것이 부족했다.

 



이 때 수라상궁이 마지막 남은 닭 한 마리를 잡아서 임금 수랏상에 올리자 인조가 눈물을 흘리며 먹었다는 사연이 담겨있다. 그렇게 시작된 남한산성의 백숙은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손꼽는 일품 요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날 광덕회일행이 주문한 요리는 오리백숙이었는데 같이 나온 감자전이나 도토리묵도 별미였다.

 



막걸리 한잔에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은 입은 두루막과 함께 삼합이었다. 이곳 남한산성은 1624년 인조가 공사에 착수 1626년에 완공한 산성인데 4곳의 성문, 16개의 암문, 성가퀴 1,897개 옹성, 성량, 우물, 샘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공사를 맡은 승려들은 조선 8도의 승군을 동원하여 진행했으며 7개의 절을 지었지만 지금은 장경사만 남아 있다. 1963년 사적 제 57호로 지정된 바 있다. 1시간의 식도락을 즐긴 일행들은 인근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며 평소 바쁜 일정으로 서로간의 부족했던 대화를 채우는 자리가 됐다.

 



이어 오후 130분 출발했던 리무진 버스에 탑승한 일행은 일반 45인승 버스를 개조해 28인승으로 만들었으니 넉넉한 좌석, 화려한 인테리어로 단장한 VIP예우를 받으며 이동했다. 1시간 30분을 달린 2대의 리무진 버스는 오후 3시 경 남양주에 소재한 다산 정약용 기념관을 방문했다.

 



다산 정약용은 1762년 출생 183674세로 사망한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였다. 안정복 이 1712년 출생하여 179180세로 사망하고 성호 이익 선생도 1681년 출생하여 176382세로 사망했으니 3명의 학자모두 동시대를 살았던 위인들이다.

 




당시 1592년 임진왜란, 1636년 병자호란이 이어지면서 조선은 전쟁의 피폐함이 극에 달했다. 위의 학자들이 실학을 집대성했을 당시 전쟁 직후라 백성들의 어려움이 극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산 정약용은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신유사옥 이후 유배생활을 하며 피폐했던 농촌의 모순을 해결하는데 주력했다.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으며 의료기술과 건축 등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화폐의 통일과 지금의 크레인에 해당되는 거증 기를 발명하기도 했다. 정약용 유적지를 가보면 입구부터 나열한 기둥의 문구들이 현재 난리 통인 대한민국의 정치판을 야단치는 내용들을 볼 수 있다.

 



특히 목민심서에는 지방 관리들의 폐단을 없애고 행정쇄신을 위한 책인데 1818년 완성되어 지금도 공직사회의 교과서로 불리고 있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목민심서의 내용은 시대를 초월하여 가장 합리적이고 공직자들이 지켜야할 덕목으로 손꼽히고 있다. 세금징수부터 근무자세, 청렴, 도리, 지금의 공직자 윤리규정까지 모든 내용이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다. 조선 후기의 3대 학자로 반계, 성호, 다산을 꼽는다.

 



이날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반계는 15살의 어린나이로 병자호란의 참상을 목격하며 이러하고는 나라가 망하겠다는 생각으로 온 생애를 마치며 만든 책이 반계수록이라는 대저를 저술했다. 하지만 이 책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갈수록 세상은 더욱 부패가 망연하며 민생은 피폐해졌다.

 



반계수록을 저술한 반계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성호 이익 선생이 반계의 학문을 높이 사서 반계 선생전을 지었다. 이후 성호 이익 선생이 운명을 달리하기 한 해 전 조선에 새로운 인재가 태어났으니 그가 바로 다산 정약용이었다.

 



이 곳 또한 문화관광해설사의 유창한 해설부터 전해 내려오는 각종 유래들을 소개하며 은행나무 낙엽이 수북한 주변이 가을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을 보냈다. 1시간이 지난 오후 4시 다산정약용 기념관을 출발한 일행은 1시간 40분 뒤인 오후 540분 처음 출발한 신 안산 대학에 무사히 도착했다.

 



주최측이 준비한 과일선물박스를 하나씩 챙겨든 일행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행사를 준비한 관계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다음을 기약했다.

 



이번 여행의 핵심은 조선시대 실학자들이 임금에게 얼마나 직언과 충언을 하였는지 백성들의 곤궁하고 피폐한 삶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해결책을 제시했는지를 알 수 있는 역사탐방 여행길이 됐다. 하지만 약 400년 이 지난 2024년 대한민국의 정치와 국민들의 어려움은 별반 다를 게 없다.

 



역사에 대한 고증이나 발자취를 밟은 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과거를 참고로 현재의 발전을 추구할 수 있으며 아울러 미래에도 보다 나은 정책들이 세워질 수 있는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역사탐방을 마친 신영철 광덕회장은 광덕회가 매년 역사탐방을 다니지만 이번처럼 다양하고 의미 있는 여행은 뜻 깊은 날이 됐다.”시기적으로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냉소적인 분위기지만 그래도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우리 민족의 저력과 대한민국의 국격에 대해 긍지를 가질 만큼 대단한 나라임을 알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다산 정약용 유적지를 소개한 문화관광해설사도 이곳을 찾아주신 광덕회를 진심으로 환영한다.”역사의 발자취를 찾는 광덕회가 안산지역의 영향력을 대표하는 분들이라 더욱 반가움이 크다.”고 말했다.

동행취재 김균식 기자 

 

김범식 (kyunsi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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